씨사이의 눈물
케냐 나이로비 판가니 신학교에 운전을 해주는 에티오피아 씨사이라는 형님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5살 정도 많은 졸업한 전도사님이었는데, 에티오피아 군대 소령으로 있었던 분이다. 그런데 나라가 정권이 바뀌면서 케냐로 망명 왔다가 사역하던 판가니 신학교에 들어오고 졸업을 했다.
나라가 자기의 나라도 아니고 갈 곳도 마땅치 않고, 다행히 운전을 할 수 있어서(아프리카에서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직업능력이다) 신학교 차량을 운전해 주었다.
내가 판가니 신학교에서 맡은 일이 총무의 일이라 시장도 같이 가고 학교 물품을 같이 사러가야 해서 많이 친해지고, 이야기도 많이 하였다. 하루는 우리 집에 씨사이 전도사님과 몇 명의 현지 신학생을 초대해서 한국식 식사를 대접했다. 물론 총각의 음식 솜씨가 별로 이었지만 너무나도 맛있게 드셔주었다. 식사 후에 가족의 이야기를 하던 중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을 듣게 되었다. 부인은 아랍에미레트에, 아들은 에리트리아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혼식 사진과, 아들의 사진을 보여 주는데 마음 한 구석이 아팠다. 그래도 한 때는 한 나라의 장교로써 엘리트였는데, 이제는 남의 나라에 망명해 와서, 운전해 주는 차를 타던 사람이 남을 위해 운전해 주고, 행복하게 좋은 집에서 가족과 살았는데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그 날 밤 기도하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이 때론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견디기 힘들 것 같은 곳으로 몰고 가시고, 내 자존심과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실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도 한순간이고 하나님께서 지키시지 않으면 쉽게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후 3년 정도 지나서 아들이 에리트리아에서 왔다. 부인이 열심히 아랍에미레트에서 돈을 벌어 비행기 값을 보내 준 것이다. 그 아들이 오는 날 시싸이 전도사님은 그 아들을 안고 기뻐하면서 볼에 뽀뽀를 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 제 아내도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선교사로 살면서 그렇게 조금씩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워갔다. 세상에 얼마나 아픔과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보게 하셨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상황을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아프리카 형제, 자매들도 보게 하셨다.
선교사로 산다는 것은 그 형제들과 함께 울어주고, 기뻐해주고, 같이 밥먹고, 이야기하고 살아가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선교사가 무엇을 현지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배우는 자리임을 깨닫게 하셨다. 지금도 씨사이의 눈물을 흘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가 있기를…….
[김시동 목사 / 세계를 품은교회 / 778-887-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