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신문 선교 칼럼: 내사랑 아프리카

시작을 해야 끝이 난다

1994년 여름, 26시간의 비행과 3곳을 경유해 드디어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조모케나타 국제공항에 국제사랑의 봉사단 17명의 팀과 함께 도착했다.

기대와 셀렘으로 도착한 아프리카의 첫냄새와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누구에게나 외국에 도착한 첫 걸음, 첫 만남은 설레이고 기억에 남는다. 그 첫걸음, 셀레임, 낯설음이 앞으로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이며 하나님의 또 다른 인도하심임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세계는 나의 교실”, “인류 최후의 혁명은 사랑의 혁명”
이 구호는 국제 사랑의 봉사단 모토 구호이다. 그런데 난 이말이 참 좋다. “세계는 나의 교실”…… 세계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배울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보통 단기선교를 준비하고 선교팀들이 갈 때, 대부분은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주러가고 그들을 선교하러 간다는 마음으로 가고, 가서도 우리는 잘사는 나라에서 온사람들이고 더 많이 알고 있어서 무엇이가 가르치려는 마음으로 현지인들을 대할 때가 있다. 그런데 단기 선교팀으로 가서 보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고,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많다. 그래서 세계는 나의 교실인것이다.

3주 동안 케냐와 소말리아에 머물며 현지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을 도울 수 있는 있는 일들을 봉사하기로 했다. 케냐에서는 맛사이 지역에 사역하시는 선교사님 사역지에서 교회 페인트를 칠하고, 초등학교에 쓸 의자와 책상 만드는 일을 했다. 1주 반이 지나고 나서 팀의 반은 소말리아로 들어가 소말리아 현지인들에게 같이 온 의사와 함께 의료사역을 지원하기로 했다. 소말리아는 당시 전쟁 중이였고 중앙정부가 들어서지 않고, 부족 정부가 지역마다 세워서 부족끼리 싸움이 한창이었다. 비행기도 민간 항공이 없고, UN 비행기를 타고 들어갔다. 선교사님이 고용한 중무장한 현지 군인들의 보호 아래 마을에 들어가서 의료사역을 하였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장애를 입고 있었다. 모슬렘 99%의 나라이기에 복음을 내놓고 전할수 없어서 조용히 의료사역을 진행했다. 이 때 나와 다른 한 명의 사역은 ‘약싸’였다. 의사선생님이 현지 환자를 진료하시고 약을 처방하시면 그 처방전에 따라서 약을 봉지에 “싸는 일”을 하는 ‘약싸’ 일을 하였다. 다른 한 자매는 손톱깍기를 가져와서 아이들의 손톱과 발톱을 이쁘게 잘라주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아이들에게 사탕도 나눠주고, 게임도 같이 하였다. 그렇게 처음에는 경계하던 그 들이 즐거워 하며 우리를 향해 웃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그들의 얼굴과 눈빛을 보며 안타까워 하시는 하나님의 눈빛이 보이는 듯 하였다.

나에게 선교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 같았고, 더 나이가 먹어서 해야 할 것 같아고, 돈이 있어야 할 것 같았고, 더 훈련되고 준비된 사역자들이 가야 할 것 같았는데 이 시작의 발걸음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는 길이 되었다. 그 아이들의 눈빛이 아프리카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시며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아프리카 영혼들을 나도 사랑하게 하셨다. 시작하신 이가 끝을 맺을것을 기대하며, 한 걸음씩 그 분을 따라 아프리카로 가기 시작했다.

[김시동 목사 / 778-867-1324]
(필자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9년을 섬긴 바 있고 현재 웨스트벤쿠버 세계를 품은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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